청담동의 럭셔리 브랜드 진화 과정

청담동이 하이엔드 명품 랜드마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럭셔리에서 하이엔드로 청담 2024

By [donnamina] | [2024.9.13.]



1. 종로에서 명동 그리고 강남

조선시대의 도심은 지금과 달랐다. 4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 안에 사대부들의 가옥이 있었고 4대문 밖은 대부분 논밭이었다. 18세기는 조선 상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한양으로 인구가 집중되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시기였다. 사대문 안에서 사업을 하려면 조정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당시 조선 상권의 중심은 종로였다.

일제 치하로 들어서면서 종로 일대는 이전만큼 활기를 띠지는 못한다. 일제가 조직적으로 키운 명동이 종로를 위협하는데 일제는 의도적으로 종로의 상권을 약화시키고자 1905년 일본 미쓰코시 경성점(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설립하고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들과 조선 부유층을 흡수한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강남은? 우리가 현재 강남3구라 일컫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는 당시 행정구역상 한양에 속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강남3구는 경기도 광주목에 속했다. 즉 강남3구는 서울이 아니라 수도권이었던 것. 그렇기에 강남은 한적한 논,밭,과수원 뿐이었다. 조선시대 후기 상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여도 조선은 농경사회에 근간을 둔 사회였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배우 김수현)이 압구정 배밭을 사들이는 장면은 당시 압구정이 배밭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조선 세조때의 공신 한명회가 지금의 압구정에 자신의 별장을 짓고 그 앞에 정자를 세웠는데 이 정자 이름을 ‘압구정’이라고 지으면서 그 일대를 압구정이라고 불렀다. 전국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는 현재의 압구정은 과거에는 유력인사가 별장을 지을 장소로 점찍을 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었다.



2. 1970 강남

서울 인구는 1960년대부터 증가하더니 1960년대 후반 무렵은 주택난이 생길 정도로 인구가 서울로 몰린다. 따라서 주거지가 몰려있던 강북의 주택만으로 서울에 정착하려는 주택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정부는 강남권 개발 계획을 진행한다. 강남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청담동은 농경지에서 상업 및 주거지역으로 바뀌게 되는데 배우 이민호가 주연한 영화 을 보면 당시 강남개발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잘 알 수 있다. 영화는 강남개발계획 정보를 미리 입수한 정재계인사들이 조직폭력배와 연계하여 인근 땅을 저렴한 가격으로 사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압구정은 한강변에 위치해 있고 한강뷰라는 탁월한 입지조건으로 처음부터 고급주거지로 개발되었다. 1976년 고급아파트로서는 거의 최초라고 할 수 있는 ‘한양아파트’가 압구정에 지어졌고 고소득층과 유명 인사들이 압구정으로 모인다. 자연스럽게 압구정은 부유층이 몰리는 고급거주지로 자리잡게 되고 지금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3. 한양유통의 갤러리아 백화점

1970년대 부유층이 압구정에 모여살다보니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가 브랜드 상권이 형성된다. 1979년 한양유통은 압구정동에 갤러리아 백화점을 처음 개점하면서 국내에서 최초로 럭셔리 쇼핑 공간을 제공한다.

한양유통은 갤러리아 백화점 매출이 거의 대부분인 기업으로 1995년 한화 그룹이 한양유통을 인수한다. 한화 그룹의 인수 목적은 당연히 갤러리아 백화점. 한양유통은 한화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된다. 한화그룹은 갤러리아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통사업을 확장하였고 명품 브랜드 유치를 강화시키는 전략으로 지금의 명품관 백화점 갤러리아로 성장시킨다.



4. 강남 확대와 2000년 이후 청담동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삶의 수준은 크게 향상된다. 해외여행 자유화로 대중이 유럽, 미국에서 명품을 사오면서 명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에 발맞추어 갤러리아 백화점은 1990년대 명품관을 선보인다.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부동산 가격상승으로 자산이 늘어난 부유층 저변이 넓어지는데 이들은 압구정 뿐만 아니라 삼성동, 청담동으로 퍼진다. 압구정에 국한되었던 강남 럭셔리 주거지는 청담동, 삼성동까지 넓어지고 강남이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명품 브랜드는 압구정을 벗어나 청담동으로 확장하거나 매장을 아예 청담동으로 이전한다. 청담동은 명품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는 데 있어 압구정보다 지리적 조건이 우수했다. 당시 압구정보다 땅값이 저렴했기에 주차공간을 만들 수 있었고 도로폭도 압구정보다 상대적으로 넓어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 운영이 가능했다.

2000년 이후 명품 플래그십은 브랜드 정체성을 정의하고 소비자들에게 럭셔리함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고급스러운 경험은 압구정 갤러리아나 현대백화점에 입점한 명품브랜드와 차별화되면서 청담동만이 지니는 특별함이 생긴다. 도산공원을 중심으로 650M에 이르는 청담동 명품거리는 2000년대 이후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면서 청담동의 럭셔리함은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뷰티, 연예사업과 관련한 사업장을 불러들인다.



4. 2024 청담동은 하이엔드로 변모중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메트로시티, 토리버치 같은 준명품 브랜드 플래그십스토어가 대부분이었던 청담동 명품 거리는 2010년부터 생로랑, 펜디 등 고가 브랜드로 바뀌었다. 코로나 명품 호황기를 지나 2024년 현재 국내 명품 시장은 성숙기에 진입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쥬얼리나 시계같은 하이엔드 브랜드로 명품 수요가 확장되고 있다.

준명품 시장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럭셔리는 하이엔드로 옮겨가는 이중구조를 띠고 있는데 이에 맞추어 청담동 또한 패션 이외에 시계와 쥬얼리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까지 다수 입점하고 있다. 650M에 명품거리 안쪽의 크고 작은 준명품 플래그십 스토어 또한 새롭게 단장하는 등 청담동 명품거리의 변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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