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L: 아메리칸 헤리티지를 담은 브랜드

A family in America wearing RRL vintage denim

우리가 즐겨 입는 청바지가 미국에서 노동자의 옷으로 시작했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청바지를 데님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프랑스의 도시 님(Nîmes)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DE는 영어의 of 나 from 과도 비슷한 문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데님(De Nîmes) ‘님에서부터 온’ 이라는 의미가 되겠네요.



셀비지 데님의 역사

이 때의 데님을 셀비지(Selvedge) 데님이라고 부르는데 Selvedge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연스러운 가장자리’라는 뜻입니다.

현재의 청바지가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입을 때도 부드러운 촉감을 선호하는데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만들었던 셀비지 데님은 직조기를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천의 느낌도 지금보다는 거칠었죠. 당시의 셀비지 공장에는 구형 직기, 구형 재봉틀, 링 스펀(ring spun), 행크(hank) 인디고 염색, 구리 리벳, 철제 버튼, 실 등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셀비지 데님을 그대로 재현한 일본의 레플리카

created by Dall-E, replica jeans

이러한 셀비지 데님은 90년대 캘빈 클라인, 게스와 같은 슬림한 청바지의 등장으로 점차 잊혀져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셀비지 데님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가득한 나라가 있었는데 셀비지 데님을 재현하고 그것을 역으로 미국과 유럽에 수출한 국가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의 90년대는 끝없이 오르는 부동산 가격, 주식, 거품경제로 대표되는 시절입니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미국 문화를 추종합니다. 90년대 시부야 거리에는 전세계의 모든 브랜드 제품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요 외에도 미국에서 안팔리고 남아있던 초창기의 청바지 형태인 셀비지 데님을 찾는 수요가 생겨납니다.

미국에서 악성재고로 남아있던 셀비지 데님을 긁어모아 일본에 판매하는 중개상들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셀비지 데님에 대한 일본 내 수요는 높아지고 미국에 남아 있던 셀비지 데님의 재고는 반대로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셀비지 데님 가격이 올라가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일본에서는 셀비지 데님을 만들 때 사용했던 구형 직조 기계로 직접 셀비지 데님을 만들게 됩니다. 미국에서 기계를 들여오기도 했지만 일본의 예전 공장에서 직조 기계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레플리카’라고 하는데요. 패션 블로그 ‘패션붑’을 운영하는 박세진님이 쓰신 ‘레플리카’라는 책을 보면 셀비지 데님의 역사와 브랜드까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패션과 인문학이 잘 결합된 책입니다.

https://www.fashionboop.com


90년대 힙합신에서 유명했던 일본 패션 브랜드 베이프도 당시의 레플리카 열풍 속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뉴진스가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베이프의 옷을 입고 공항 입국룩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레플리카 열풍은 일본에서만 그치지 않고 미국과 유럽으로 퍼지게 되는데 랄프로렌도 RRL 이라는 브랜드를 만들면서 데님 웨어 및 워크 웨어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랄프로렌의 청바지 – 랄프 로렌 컬렉션, 퍼플 라벨, 폴로 그리고 RRL

created by Dall-E, 20's woman with RRL jeans.

랄프 로렌 하위 브랜드에서도 청바지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셀비지 데님에서 찾은 빈티지 가치를 포착한 랄프 로렌은 RRL(더블알엘)을 별도로 1993년에 론칭하고 ‘아메리칸 헤리티지’를 자연스럽게 계승합니다. 캘빈 클라인은 이후 글로벌 패션 기업인 필립스-반-호이젠(PVH Corp.)에 인수되었고 게스는 존재하긴 하지만 이전만큼의 영향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랄프 로렌은 아지고 가족 기업으로 그 역사를 이어온 만큼 RRL이 갖고 있는 아메리칸 헤리티지 이미지 또한 이어지고 있습니다.

RRL이라는 이름도 랄프로렌과 그의 부인인 리키 로렌이 콜로라도주에 소유하고 있는 농장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1,2차 골드러시에 서부로 달려가던 개척자들, 철도 공사에 참여하던 현장 노동자들, 광부들이 셀비지 데님을 입기 시작한 1900년대 초반 워크 웨어를 메인으로 하는 브랜드 입니다.

그러나 RRL에서는 레플리카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RRL의 카달로그에는 클래식한 셀비지 데님 팬츠, 밀리터리 스타일의 재킷, 다양한 빈티지 디테일이 돋보이는 제품을 선보입니다. 레플리카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RRL에서 생산하는 셀비지 데님은 고품질 원단을 사용하고 장인이 만듭니다.

데님은 소재 자체가 세탁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일하는 사람의 직업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주름의 형태가 다르게 잡히고 워싱의 느낌도 차별화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청바지를 자주 빨지 않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빨리 워싱을 보고자 하는 소비자들 때문에 아예 브랜드에서 워싱을 한 채로 제품을 내보이기도 하죠. 빈티지 제품이라고 해도 이미 워싱이 된 채로 판매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셀비지 데님과 워크웨어는 단순한 패셔을 넘어, 시대와 문화를 담아낸 역사의 산물입니다. 데님이 프랑스에서 건너와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셀비지의 가치를 일본에서 찾아 다시 미국과 유럽을 건너 전세계로 퍼진 인문학과 역사를 품고 있는 패션 카테고리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셀비지 데님은 그야말로 개인의 삶과 시간을 반영하는 옷이며, RRL은 현존하는 브랜드 중에서 탄생 자체가 아메리칸 헤리티지를 지니고 그 가치를 잘 살려낸 브랜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은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빈티지 패션의 매력이 계속해서 나아가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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